1-1. 미국 금융시스템과 중앙은행의 시초
중앙은행의 시초는, 17세기 말 유럽에서 탄생했다. 1668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릭스방크(Riksbank), 1691년에 출범한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이 그것이다. 초기의 릭스방크와 잉글랜드 은행은,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현대의 중앙은행들과 매우 달랐다. 당초엔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사익을 채울 목적으로 세운 민간업체였을 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익을 실현하기 위한 업무가 공익과 겹치게 되었는데, 이 부분을 점차 제도화한 결과가 현대의 중앙은행이라고 볼 수 있다.
17세기 말, 유럽 왕실(정부)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 누구나 기꺼이 믿고 받는 ‘보편적 돈’은 금과 은 정도였다. 왕실엔 금과 은이 많지 않았다. 전비를 빌리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지만, 충분히 팔지 못했다. 이미 민간에선 은행들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이들마저 국채를 사주지 않았다. 전쟁에서 지면 유폐되거나 목이 잘릴 왕실 사람들에게 뭘 믿고 돈을 빌려준단 말인가?
내 친구’ 톰이 다른 동네 선술집에서 피시앤칩스를 안주로 에일맥주를 퍼마신 다음 종이에 ‘1파운드’라고 써서 주인에게 건네며 거슬러 달라고 한다면 치도곤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왕실로부터 법령으로 ‘잉글랜드 은행’이라는 상호까지 받은 저 민간사업자들이 발행한 종이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종이돈의 배후엔 톰이라는 한낱 서민이 아니라 왕실의 권위 및 ‘왕실로부터 돌려받게 될 금과 은(국채)’이 묵직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뢰 덕분에 해당 은행이 발행한 종이돈은, 국가(왕실)가 가치를 보장한 화폐로 여겨지면서, 국가의 상당한 지역에서 통용력을 발휘하게 된다. 힘센 종이돈(지폐)이다.
이때 구세주가 나선다. 민간사업자 몇 명이 공동으로 왕실에 돈을 빌려주겠다(국채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대가를 요구했다. 왕실에서 받은 국채를 기반으로 ‘종이돈’을 독점 발행해 유통할 권리다.
왕실은 전비를 빌려서 기뻤겠지만, 잉글랜드 은행의 민간사업자들이야말로 ‘대박’을 쳤다. 종이에 숫자를 인쇄해 뿌리기만 하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돈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치 도깨비방망이 같은 권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독점적 발권력).
비슷한 형태의 은행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설립되었다. 이런 은행들은 왕실과 맺은 관계를 통해 점차 ‘국고금(왕실이 세금으로 걷은) 예치’ ‘국채 발행 및 왕실 채무상환 대행’ 등의 금융업무를 맡으며 ‘정부의 은행’으로 발전해 나간다. 비록 민간 소유이지만 해당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폐를 발행하며 ‘정부의 은행’ 역할까지 맡으니, 이런 유형의 은행들을 일단 ‘국가 은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국가 은행의 발권력 덕분에 그 소유자인 민간사업자들은 엄청난 경제적 수익과 영향력을 누렸다. 찍어낸 지폐를 다른 민간은행이나 상인에게 빌려주고(통화 공급)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왕실에 빌려준 자금이 가령 100만 파운드어치에 불과하더라도(100만 파운드 상당의 국채만 담보로 갖고 있지만), 국가 은행은 120만 파운드 규모의 지폐를 발행·유통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누군가 지폐를 갖고 와서 금으로 바꿔 달라(금 태환)고 할 때 교환해 주지 못하면 신뢰가 무너질 것이므로 국가 은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금을 많이 비축해 놓아야 했다(지급준비금). 이런 금력과 왕실의 뒷배에 힘입어 국가 은행의 권위가 높아지면, 다른 은행들 역시 국가 은행에 계좌를 만들어 돈을 보관하려고 할 것이다(은행들의 은행). 국가 은행에 맡겨두면 돈을 떼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 은행’을 중심으로 다른 민간은행과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 은행은 민간은행들 사이의 복잡한 거래를 청산하는 역할(A 은행이 B 은행에 줘야 하는 돈이 10만 파운드, B 은행이 A 은행에 지급할 돈이 12만 파운드라면, 국가 은행은 자행에 있는 B 은행 계좌에서 A 은행 계좌로 2만 파운드를 송금)을 수행할 수 있다(지급결제 기능). 국가 은행이 다른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discount window) 금리는 현대의 기준금리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은행 시스템(banking system)’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민간기업인 국가 은행들이 힘센 지폐의 발행과 함께 점차 ‘정부의 은행’ 및 ‘은행들의 은행’이라는 공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중앙은행(central bank)이라는 용어는 19세기 후반에야 탄생하지만, 일단 이들을 ‘초기 중앙은행’으로 부르기로 하자. 이 초기 중앙은행들은 20세기 중반 들어서야 국유화되고 그 이후엔 행정부로부터도 독립된 공공기관으로 발전한다.
1-2. 미국 금융시스템의 완성과 로스차일드 가문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하나의 상징이었다. 미국이 자체 금융시장을 개발하기 전, 만약 유럽에서 자금이 유입되지 않았다면 미국의 상품거래나 채권발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럽 자금시장의 중심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었다. 창시자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836년 숨을 거두면서 규모가 밝혀지지 않은 막대한 자산을 남겼다. 그의 유산은 미국 대리인 어거스트 벨몬트(1813~1890)를 통해 미국의 산업 성장을 지원하는 풍부한 자금이 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에 진출한 것은 1820년대다. 유럽의 정부 대출 분야에서 지배력을 확보한 후, 로스차일드는 곧바로 미국에 관심을 돌린다. 1821년 로스차일드는 필라델피아의 필립스 은행과 제휴 형태로 미국 시장에 진입한다. 그들은 로스차일드를 위해 투자 기회를 알선하고, 새로운 고객을 소개한다. 1833년까지 로스차일드는 볼티모어와 뉴욕 등에 지점을 두었다. 이들을 통해 로스차일드는 다양한 레벨의 지자체 채권, 운하와 광업 분야의 주식, 은행 등에 투자한다. 1834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로스차일드의 런던지점은 그동안 베어링 브라더스의 손에 있던 유럽에서 미국 정부의 은행 역할을 대표하는 권리까지 확보한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대공황으로 알려진 ‘1837년 금융공황’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공황의 여파로 미국경제도 고사 상태가 된다. 뉴욕의 로스차일드 지점도 패닉으로 폐업 상태가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로스차일드 은행의 야심 찬 젊은 독일인 직원 어거스트 벨몬트는 그가 지시받은 아바나로 가는 대신 뉴욕으로 향한다. 그는 하늘이 내린 절묘한 타이밍을 놓칠 수가 없었다. 벨몬트는 월스트리트에 작은 사무실을 임차해 자신의 회사를 세운다.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그런 나귀는 짧은 끈으로 묶어야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인다.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벨몬트는 미국 주재 대리인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벨몬트가 만든 회사는 사실상 자본이 전혀 없이,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관계만 맺고 설립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로스차일드와의 연줄만으로 자금을 빌릴 수가 있었다. 그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침체한 시장에서 매수를 시작한다. 그는 미국이 빌려준 자금으로, 로스차일드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주식 상품, 은행어음 등을 매수했다. 이러한 매수는 부도 직전까지 몰린 은행에 단비가 됐다.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미국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 때문이다.
국제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가로 자리 잡은 벨몬트는 로스차일드를 위해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벨몬트 자신 또한 백만장자가 된다. 그는 처음으로 투자은행과 정치를 연결한 사람이다. 벨몬트는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그의 정치적 인맥 덕분에 로스차일드는 더욱 많은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본래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네트워크다. 네트워크에 기반해 환전 차익, 왕가와 정부 대출, 국공채 발행 중개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 유럽 정치의 정보를 수집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만들었다.
그와 링컨은 남북전쟁 동안 꾸준히 편지를 교환했다. 전쟁 초기 로스차일드와 영국 정부 모두 북부 연합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벨몬트는 전쟁자금을 빌리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또한 벨몬트는 전쟁 중 남부에 대한 투자를 막기 위해 유럽 은행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전쟁 중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리인으로 벨몬트는 상당한 규모의 정부 채권을 사들였다. 로스차일드는 전쟁 중에 늘 그랬던 것처럼 양쪽에서 모두 돈을 벌 수가 있었다.
벨몬트는 유럽 자본과 산업국 미국 사이에 견고한 다리를 세워 놓았다. 동시에 그는 금융과 정치를 맺어주었다. 그의 주된 역할은 정부자금 조달과 기업을 지원하는 자금시장에 있었다. 벨몬트를 통해 로스차일드는 미국의 정치와 유대를 맺었다. 벨몬트의 정치적 영향력은 로스차일드가 구매한 보험증권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이 권력을 잃으면서 벨몬트의 정치적 영향력도 점점 약해진다. 그에 따라 미국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도 사라져갔다. 무엇보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다른 미국으로 발전한다. 1890년 아버지의 사망 후 회사를 물려받은 벨몬트 주니어는 이제 대리인이 아니다. 로스차일드의 수모를 견디며 아버지가 만들었던 회사, 어거스트 벨몬트 앤 컴퍼니의 대표가 된다. 벨몬트 주니어는 최초의 뉴욕시 지하철, 케이프 코드 운하 등에 투자한다. 벨몬트 주니어의 지도 아래 그의 은행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은행 중 하나로 남았다.
1-3. 로스차일드 가문과 음모론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달러를 생산하는 것에 개입하며 아직도 세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이 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제도 폐지를 하면서 기축통화는 달러가 되었는데, 이 달러를 생성하는 것이 바로 FRB(Federal Reserve Board/Banks)이다. 이곳은 미국의 중앙은행이지만 민간은행이고, 이 민간은행의 최대 주주들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도 어쩌질 못하며, JFK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으려다 암살당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제도 폐지 이후, 이 전에도 이곳은 미국의 중앙은행이지만 민간 은행이고 이 민간 은행의 최대 주주들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1-4. 초기 FRB(Federal Reserve Board/Banks)의 주주(총 20만)
• 록펠러와 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 3만
•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 1천
• JP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 5천
•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1만 2천), 체이스은행(6천), 케미컬은행(6천) 총 2만 4천
• 후에 이들 은행의 연준 지분은 조정되어 53%에 이르게 되고 현재는 약 70%대로 추정.
• FRB는 현재 Fed(United States Federal Reserve System)로 불린다.
1-5. 음모론
• 에이브러햄 링컨 –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하고 그린백을 발행. 1865년 4월 15일 암살.
• 앤드루 잭슨 – “내가 은행을 죽였어”라는 유언을 남긴 대통령,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암살자의 권총 2발 모두 불발로 겨우 암살당하지 않는다.
• 존 F. 케네디 – Fed를 배제하고 재무부에 화폐발행권을 넘겨주는 법안 준비 중, 1963년 11월 22일 암살.
1-6. 가문의 문장
유대계 대부호 가문 로스차일드는 “붉은 방패”를 뜻하는 독일어 ‘춤 로텐 실트'(zum rothen Schild)를 영어식 발음으로 바꾼 것인데, “붉은 방패”라고 하는 그 뜻은 그들의 문장에서 따온 뜻이다.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현재까지도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다. 주된 사업 분야는 금융업이고, 그 외 석유, 금, 레저, 와인, 광산업, 호텔 등 각종 분야에서 활동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떠오르게 된 사건들과 비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각종 음모론과 서브컬처에서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밀스럽게 세계를 지배하는 흑막으로 자주 지목받는다. 사실 이런 이미지가 생긴 이유는 유대 자본이 현재까지도 미국 내에서 큰 영향이 있고,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대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유명한 벨푸어 선언이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와 로스차일드 가문 사이의 뒷거래로 성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1-7. 오늘날의 로스차일드 가문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의 규모는 커지고, 금융 감독 시스템은 전례 없이 정교해지고 있다. 록펠러 가문이 쪼개지면서 과거의 영향을 상실하였듯 로스차일드 가문도 긴 세월 동안 대규모 전쟁과 재산 분할 등으로 그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RB) 등을 주무른다는 음모론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고 사실이다. Federal Reserve Board/Banks 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실제 주인이다.
1-8.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국제결제은행의 주요 주주는 다양한 금융 기관과 개인 투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주주의 소유 구조는 주식시장에서 여러 주주 간에 분산 되어 있다. 다만 그 주주사 대부분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소유이다.
BIS는 FED와 더불어 국제금융의 중추 기관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전후 배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1930년 5월 17일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왕국, 영국, 일본제국 6개국 중앙은행이 스위스에 설립한 국제기구다.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홍콩과 멕시코시티에 대표사무소를 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1996년 9월 33번째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2018년 11월 1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사로 선임되었다. BIS 비율 등으로 불리는 자기자본의 기준을 1988년 7월에 정해 국제적으로 통용하고 있다.
1-9. 바젤은행감독위원회(바젤위원회) BCBS
국제결제은행(BIS)의 산하 위원회로,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는 1974년 6월에 독일 헤르슈타트 은행(Herstatt Bankhaus)의 파산으로 인해 국가 간 지급결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1974년 12월에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위원회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이후 회원국이 확대되어 현재는 27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과 감독 기구가 회원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2009년 3월 15일 가입 이후 한국은행과 더불어 금융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금융감독원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의 BIS 본부에 위치하고 있다. 1988년 7월 바젤 협약의 첫 협약인 바젤 1을, 2004년 6월에는 바젤 2를, 2010년에는 바젤 3을 발표하였다.
1-10. 비트코인과 로스차일드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하거나 연관된 금융 기관이나 기업, 정부, 왕실에 대한 정보는 일반적으로 공개되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또한 100년 앞, 미래 우주 행성 간 금융 결제 시스템 준비하기 위해 테스트 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
1-11. 일반적으로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 금융회사
• N M Rothschild & Sons Limited – 영국 런던에 위치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주요 은행.
• Rothschild & Co(The Rothschild Group) –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금융 서비스 회사.
• Rothschild Bank AG –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은행.
• Rothschild & Co Bank International Limited –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국제 은행.
• Rothschild Trust(RIT Capital Partners) – 자산 관리 및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 Edmond de Rothschild Group – 개인 금융과 자산 관리에 중점을 둔 스위스 회사.
• Rothschild Asset Management – 자산 관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사.
• Rothschild & Co Wealth Management – 개인 및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
• Rothschild & Co Gestion – 금융 관리 및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회사.
• Rothschild & Co Financial Services – 금융 조언, 투자 관리 등을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 회사.
• The Bank Of Nova Scotia – 케나다에 위치한 금융그룹.
• HSBC(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 – 영국에 본사를 둔 금융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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