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준 오리진

닥터 준 오리진

[SF Series: Dr. June Origin]

EPISODE 1. 카오스(Chaos)와 접속하다

“소년은 혼란 속에서 두려움 대신 패턴을 읽었고, 녹색 커서의 깜빡임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문을 발견했다.”

1. 공명(Resonance): 맹수와의 첫 번째 동기화

소년 준(June)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태생적으로 남달랐다. 어느 오후, 동네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줄 풀린 맹견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어른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아이들은 얼어붙었다. 맹수의 눈은 통제 불능의 붉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것은 엔트로피(Entropy)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것은 어린 준이었다.

소년에게 맹견의 짖음은 소음이 아닌, **불안정한 주파수(Frequency)**로 들렸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주파수를 맞추면 돼.’ 준은 천천히 다가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소년은 맹견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그 찰나,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짐승의 눈빛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소년의 손바닥을 통해 전달된 안정된 파동이 맹수의 카오스를 잠재운 것이다. 공포가 아닌 공명(Resonance). 훗날 그가 플라즈마라는 가장 거친 에너지를 손끝으로 다루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기묘하고도 강렬한 첫 번째 ‘제어(Control)’의 기억이었다.

2. 두 마리 용의 계시 (The Binary Prophecy)

8살, 소년은 평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꿈을 꾼다. 대지를 뚫고 하늘 끝까지 자라난 거대한 콩나무. 그리고 그 줄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전설 속의 존재, 두 마리의 거대한 용이었다.

꿈속의 세상은 아비규환이었다. 첫 번째 용은 닥치는 대로 친구들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때 벌어질 파괴적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소년은 전율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두 번째 용은 달랐다.

그 거대한 은백색의 용은 소년 준의 코앞까지 내려왔다. 용의 거대한 눈동자가 준의 작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
그것은 침묵의 스캔(Scan)이었다. 용은 준을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준과 눈을 맞춘 뒤, 마치 **”너는 보았다. 그러니 때가 되면 올라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남기듯,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다시 하늘로 승천했다.

소년은 잠에서 깼지만, 그 눈맞춤의 감각은 생생했다. 한 마리는 파괴하고, 한 마리는 진화한다. 나는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 그날 밤, 8세 소년의 무의식 속에 **’선택받은 설계자’**의 코드가 각인되었다.

3. 설계자의 싹 (The Architect)

초등학교 시절, 소년의 우주는 방바닥에 펼쳐진 **’아카데미 프라모델’**과 **’백과사전’**이었다. 친구들이 완성된 로봇을 부딪치며 놀 때, 준은 접착제 냄새를 맡으며 부품들이 맞물리는 **구조(Structure)**에 탐닉했다.

“왜 이 부품은 여기에 있어야만 하는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분류해 놓은 백과사전은 그에게 데이터베이스의 원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KBS 월간 컴퓨터 학습>**이라는 잡지. 그 얇은 종이 틈새에서 소년은 활자로 된 번개를 맞았다. ‘컴퓨터’. 스스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기계. 소년의 심장이 아날로그의 껍질을 깨고 뛰기 시작했다.

4. 애플 II: 녹색 커서의 우주 (Hello, New World)

13세, 중학교 1학년. 부모님이 사주신 애플 II (Apple II) 컴퓨터가 책상 위에 놓이던 날, 닥터 준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변변한 운영체제(OS)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전원을 켜면 들려오는 투박한 디스크 드라이브 소리와 검은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녹색 커서(Cursor). 그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무한의 캔버스였다.

소년은 BASIC 언어를 독학하며 기계와 대화를 시도했다.
HPLOT 100, 100 TO 200, 200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화면에 빛의 선이 그어졌다. 단순한 그래픽이 아니었다.

“내가 입력한 텍스트가 물리적인 빛을 통제한다.”

그것은 마법이었다. 소년은 밤새도록 모니터 앞에 앉아 선을 긋고, 도형을 만들고, 자신만의 게임을 설계했다. 복잡한 현실 세계를 0과 1로 재구성하여 통제할 수 있다는 짜릿한 전율.

이때 13세 소년 준이 느꼈던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정의하는(Software Defined Hardware)’ 감각은, 훗날 인류를 레벨 2 문명으로 이끌 **RPU(Reality Processing Unit)**를 설계하는 가장 강력한 씨앗이 되었다.

(Episode 2에서 계속…)


댓글 남기기